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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전에 순직" "정말 월급 못 줄 판"…교수도 병원도 아우성

전공의 집단 이탈 한 달…교수 체력도 업무도 한계 봉착
빅5 하루 10억씩 적자…마통 뚫고 다음달 월급 걱정까지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3.13/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김규빈 강승지 조아서 기자 = 전공의 집단 이탈 한달째를 맞아 남은 의료진들이 '번아웃'(신체적 정신적 고갈)을 호소하고 있고, 환자가 급격히 줄어든 병원은 경영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전공의들이 본격 이탈을 시작한 뒤 한 달 만에 교수도 병원도 한계에 봉착했다. 교수도, 병원도 이 사태를 이겨내지 못하면 말 그대로 의료 붕괴는 불보듯 뻔한 일이라 의료계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공의 이탈에 이어 전임의들까지 병원 현장을 떠나면서 이들이 해왔던 업무들을 도맡게 된 교수들의 경우 이미 체력의 한계를 느낀 지 오래다.

20개 의과대학 교수들이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데에는 정부의 의대증원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버티지 못해 나가게 생겼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사직서를 내고 떠난다기보다 더 이상 못 버텨서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지금 교수들이 거의 한 달째 집에도 못 가고 있으니 개인이 버틸 수가 없는 거다. 자연스럽게 진료 현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빅5 병원이 아닌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도 "너무 힘들다. 진짜 총선을 당기든지 어떻게 안 되겠느냐"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면서 "이러다가 사직이 아니라 정말 순직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교수들의 체력적 한계도 문제지만 평소 해오지 않던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매일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다.

한 공공의료원의 교수는 "체력적으로도 그렇지만 어떤 과에 교수가 몇 명 없으면 계속 당직을 세울 수 없으니 불기피하게 전문 분야가 아닌 교수를 투입하게 되기도 한다"며 "손 놓은 지 20년씩 되는 그런 일들을 해야 되는 일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직을 서다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일들이 솔직히 있다"며 "의사로서 불안하고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전공의들이 빠진 지 한 달 만에 교수들이 극한 상황에까지 내몰린 건 값싼 전공의들의 노동력으로 병원을 유지해온 기형적인 구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빅5 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 수 대비 전공의 비율이 가장 적은 서울성모병원은 33.8%, 가장 많은 서울대병원은 46.2%에 이른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가가 적다보니 전공의 착취를 안 하면 안 되는 것이고, 교수 또한 적게 뽑아놨으니 전공의가 나가면 교수가 갈려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한 달째를 맞은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나란히 길을 건너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2024.3.1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교수들이 못 버티는 것도 문제지만 병원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당장 의료진들의 월급 걱정을 하게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8일부터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한 부산대병원은 600억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에 더해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 두 곳 모두 의사직을 제외한 직원 6000명을 대상으로 무급 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하루 평균 5~6억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00억~150억원 규모의 경영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서울 빅5 병원 상황도 좋지 않다. 전공의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던 서울대병원의 경우 1000억 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연세의료원과 서울아산병원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빅5 병원 모두 하루에 10억 원 정도씩 손해를 보고 있다"며 "코로나 때도 병상 가동률이 70~80% 유지가 됐는데 지금은 50% 정도밖에 안 된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을 가지 못하는 환자들이 2차병원, 전문병원에 몰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전문병원이나 2차병원에 환자가 몰려 단군이래 최대 호황 누린다고 하는데 중증 환자 하다보면 번아웃이 생겨 여러 문제가 발생할 시점이 생긴다"며 "결국 모든 피해는 환자가 보기 때문에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원장은 "하루에 10억씩 적자를 보고 있는데 한 달이면 300억, 두 달이면 600억"이라며 "지금도 힘든데 두 달이 넘으면 정말 월급을 못 준다. 총선 이후까지 가게 된다면 정말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전제조건을 단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전공의들에게 병원 적자 상황에 대한 민사소송 책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 차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큰 병원들이 하루에 적게는 10억 원에서 20억 원 적자가 난다고 하는데 이 부분들에 대한 민사소송까지 생각한다면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며 "잘못된 의료계의 집단행동 문화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공의들이 나가자 보건의료 정책을 위한다며 각종 명령을 내렸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게 '종합병원 망해라' 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자존심만 세울 것이 아니라 현재 닥친 문제들을 정확히 바라보고 사태 해결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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