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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취재기] "수교 후 첫 한국인 입국"…교류협력 확대 기대감 현장서 확인

[쿠바 취재기]

K팝·태권도·자동차·휴대전화…쿠바인 일상 속엔 이미 '한국' 깊이 자리잡아연료·식량 부족·물가폭등 등 경제난 속 한줄기 빛으로 떠오른 한·쿠바 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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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넘치는 '카리브해 진주'…美제재가 장애물이나 인적·물적교류 활발해질듯
[쿠바 취재기]
갑작스럽게 정전된 쿠바 식당 내부
[쿠바 취재기]
[촬영 이재림 특파원]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정말 얼른 다녀올게요"
쿠바 아바나 도심의 한 식당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현지 주민은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남기고 쏜살같이 자리를 떠났다.
식당 인근 한 주유소의 대기 행렬에 있던 다른 주민에게 "금방 돌아올 테니 순서가 오면 전화해 달라"며 자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 지 30여분 만의 일이다.
주유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주유소 대기줄에서 앞뒤 차량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곳에서 어느 정도 용무를 보는 건 서로 이해해 준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 법한 빈곤 속에서도 친절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 이 나라 외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취잿거리를 찾겠다는 계획은 뜻하지 않은 '혼밥'으로 가로막혔지만, 일상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쿠바 경제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식당에서는 갑작스럽게 정전까지 발생했다.
캄캄해진 내부와 툭 끊긴 노랫소리, 멈춰버린 천장 선풍기(실링 팬)가 별일 아니라는 듯 점원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전등을 가져와 식탁을 밝혔다.
쿠바 한 건물 1층에서 물건 파는 상인
[촬영 이재림 특파원]

홀로 남은 연유를 궁금해하는 듯한 낌새에 "(동행이)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다"고 설명했더니, 그는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카드 결제기 오류 등 문제로 결국 30여분 만에 돌아온 주민은 음식을 대부분 포장해 귀가했다.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공식 수교를 깜짝 발표한 이튿날인 15일(현지시간)부터 닷새간 머문 아바나와 그 인근 도시의 주민 일상에는 좀체 출구를 찾지 못하는 만성화된 경제난이 도처에서 손에 잡힐 듯 목격됐다.
언제 기름탱크가 채워질지 알 수 없는 주유소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고단함, 식량 수급 불균형으로 초저가 배급제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든 구조적 한계, 어른 손바닥만 한 치즈피자 35판을 사면 사라지는 한 달 평균 월급(4천200페소·1만8천690원 상당)의 가벼움 등은 주민들과의 대화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시가와 칵테일 모히토, 살사, 천혜의 자연환경 등 반짝반짝한 매력으로 넘치는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나라지만, 오늘을 살아야 하는 주민들의 경제 상황은 에너지 부족, 식량난, 물가 폭등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흐릿하기만 한 것처럼 보였다.
쿠바 주차장에 있는 관광객용 번호판 부착 현대차
[촬영 이재림 특파원]

북한의 오랜 우방이었던 쿠바가 한국의 손을 덥석 잡은 배경에는 2021년 152%, 2022년 76.1%, 2023년 62.3%의 물가 상승률 숫자만으로는 짐작하기 힘든 경제난이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 문화의 저력과 영향력은 쿠바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젊은이들은 2주에 한 번 커버댄스 경연대회를 열 정도로 K팝에 열광했고, 중장년층은 2010년대 초반 방영한 K드라마 주인공들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이에 따른 수출입 대금 결제 지연 등 걸림돌은 산적해 있지만, 한국 업체들의 현지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한국 업체들의 제품 역시 사회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광장 벤치에 앉아 통화하는 청년의 휴대전화와 딸 1명을 둔 아바나 도심 택시 기사의 차량 핸들 가운데에는 한국 기업의 로고가 선명했다.
미국 전자여행허가제(ESTA) 배제 가능성 때문에 관광객이 갑자기 몰린다든지 하는 일은 없겠지만, 한때 1만 천여명의 한국인이 찾았던 쿠바에서는 '수교국' 한국과의 교류를 반길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바람에 펄럭이는 쿠바 국기
[촬영 이재림 특파원]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까지 비행시간은 2시간 30여분 정도 소요됐다. 그동안 선뜻 방문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직접 와보니 멀지 않은 거리였다.
오는 8월부터 인천∼멕시코시티 직항편이 재개되면, 한국에서 멕시코시티를 거쳐 이곳 쿠바 방문길에 오르는 한국인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화물을 따로 부치지 않은 상황에서 항공기에서 내려서 입국 심사까지 완전히 통과하기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부 다른 나라에서 온 방문객의 경우 코로나 백신 증명서 등을 요구했지만, 한국 여권을 보여주니 출발지 공항에서 구입한 방문 비자 외엔 다른 서류를 요청하지 않았다.
별도로 쿠바 외교당국 등을 통해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믿을 만한 취재원들은 모두 "이번이 양국 수교 후 한국인 첫 입국"이라고 전했다.
양국 수교 후 한국 언론 중 첫 현지 취재였던 이번 일정은 뜻하지 않게 '수교국' 한국 국민 1호의 방문길이 됐다.
쿠바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내 미국 아메리칸항공 비행기
[촬영 이재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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