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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보다 8년 빠르고 값도 싸다”... 제약사들, 우주 신약 개발에 나서는 이유

”지구보다 8년 빠르고 값도 싸다”... 제약사들,  우주 신약 개발에 나서는 이유

우주 신약 개발 시대 성큼

사진=NASA, 그래픽=양인성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대형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지난 12일(현지 시각) 두 번째 우주 신약 연구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우주 기반 시설 스타트업 ‘레드와이어’는 이날 일라이 릴리가 자사의 우주 의약품 제조 플랫폼 ‘필박스(PIL-BOX)’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주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획기적으로 바꿀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주 공간의 ‘미세중력(microgravity)’을 활용하면 의학 연구에 소요되는 시간을 앞당길 수도 있고, 순도 높은 약품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라는 것이다. 우주 바이오 분야를 연구하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초록 박사는 “우주에서는 중력의 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바이오 의약품 결정(結晶)의 순도가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며 “연구 개발을 넘어서 우주에서 의약품 생산까지 목표로 하는 기업이 많다”고 했다.

중력 차이가 결과의 차이

일라이 릴리는 오는 21일 발사 예정인 스페이스X의 국제우주정거장(ISS) 보급선에 새로운 신약 실험을 위한 필 박스 2호를 실을 예정이다. 필박스는 의약품이 결정을 이루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실험 장비다. ISS 상주 우주비행사가 필박스를 수령해 정거장에 설치하면 지구로 데이터가 송신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진다. 두 기업은 지난해 필 박스 1호에 인슐린을 실어 보내 미세중력 환경이 인슐린 결정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치료제 개발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머크, 아스트라제네카, BMS 등 빅파마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우주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2010년대부터 우주에서 연구를 시작해 상용화 단계까지 온 대표적인 사례다. 머크는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ISS의 미세중력 환경에서 키트루다의 주요 단백질을 합성하면 지구에서 보다 훨씬 균일하고 순도가 높은 결정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단백질 결정이 안정적이면 약물을 냉동보관하지 않아도 되고 같은 재료로 많은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등 효율성이 높아진다.

미세중력 환경에서 신약 개발 속도가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은 지난 2022년 우주에서 신약 후보 약물 TMBIM을 암 세포에 적용해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회사 측은 “지구에서 실험하는 것과 비교해 결과물 도출이 약 8년 앞당겨졌다”고 했다. 균일한 단백질 결정을 얻을 수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우주 연구의 이점이 알려지면서 제약사의 의뢰를 받아 우주 실험을 대신해주는 스타트업도 생겼다. 미국의 바르다(Varda)는 우주선에 신약 개발 연구용 캡슐을 실어 우주선이 운항하는 시간 동안 미세중력 상태의 영향을 관측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 ISS로 보냈던 캡슐을 성공적으로 회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우주 환경은 생명을 구하지만 굉장히 비싼 신약의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국내에서도 활발히 연구

국내에서도 우주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보령이다. 보령은 지난 2022년 미국의 우주 정거장 건설 기업 액시엄스페이스에 6000만달러(약 800억원)를 투자하고, 올 초 국내 합작 법인 ‘브랙스스페이스’를 공식 출범했다. 보령은 올해 안에 다른 기업·연구기관 등과 협업해 지구 저궤도에서 의료·제약 관련 실험을 진행하는 등 ‘우주 헬스 케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스페이스린텍은 2026년 우주 의약품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우선 단백질 결정 성장, 줄기세포 배양 등 우주 환경을 활용한 산업화 기반 기술 확보를 위해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협조를 받아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지하 실험 시설 예미랩에서 무중력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5월 국내 우주 기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소형 발사체에 실험 장비를 실어 장비 테스트에 나설 예정이다. 김병곤 스페이스린텍 연구소장은 “우주 산업을 민간에서 이끄는 ‘뉴 스페이스’ 시대가 되면서 거의 매일 로켓이 쏘아올려지고 있다”면서 “이점이 뚜렷하고, 비용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여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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