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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그다음주도 체류"…이종섭 귀국, 공수처는 '딜레마'

'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 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후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사진=(인천공항=뉴스1) 신웅수 기자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다 출국한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출국 11일 만에 귀국했다.

이 대사는 이번 귀국이 방산협력과 관련된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갑작스럽게 회의 일정이 잡힌 데다, 앞서 공수처 측에 조사기일을 빨리 정해달라는 촉구서를 보낸 사정 등을 고려하면 '도피성 출국'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 검찰단·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일도 마치지 못한 상황. 하급자 조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해 사건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윗선이었던 이 대사를 조사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이 대사를 즉시 조사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어, 공수처가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당장 이 대사를 소환한다면 보여주기식 조사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소환을 마냥 늦출 경우 공수처가 정치적 판단으로 수사를 지연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도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11일 만에 돌아온 이종섭…"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 대사는 21일 오전 9시35분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사는 귀국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저와 관련해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선 이미 수차례에 걸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렸기 때문에 여러 의혹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면서도 "체류기간 공수처와 일정 조율이 잘 돼 조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오는 25일부터 호주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카타르, 폴란드 등 6개국 주재 대사들이 참석하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했다.

이 대사는 "다음 주는 방산 협력과 관련된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 같고, 그다음 주는 한국-호주 간에 계획돼 있는 2+2회담 준비와 관련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며 "이 두 가지 업무가 전부 호주대사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의무로 그 의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최소 2주 이상 국내에 체류한다고 밝히면서도 다시 호주로 돌아가는 일정은 밝히지 않은 만큼, 공수처에 조사를 촉구하며 총선 때까지 국내에 머무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난감한 공수처…"말씀드릴 입장도, 드릴 말씀도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진=과천(경기)=이기범 기자 leekb@

공수처는 이 대사 귀국에 대해 말을 아꼈다. 공수처 관계자는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밝힌 이 대사 발언에 대해 "현재로선 말씀드릴 입장도 없고, 드릴 말씀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17일 이 대사의 소환 시점을 조율 중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수사팀이 제반 수사 진행 상황을 감안하며 사건 관계인 측과 협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고발장을 접수한 후 5개월 만인 지난 1월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 의혹 관련자들과 국방부 검찰단·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했고, 지금도 압수물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의혹의 윗선으로 지목된 이 대사가 이달 초 호주대사에 임명되자, 공수처는 지난 7일 이 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4시간가량 약식 조사했다. 이후 이 대사는 지난 10일 저녁 호주로 출국했다.

공수처는 이 대사에 대한 추가 수사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그 시기는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김 사령관, 유 법무관리관 등 핵심 피의자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윗선을 조사할 경우 형식적인 조사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 놓은 공수처? 손 없는 공수처?


일각에서는 이 대사가 고발된 지 8개월이 흘렀는데도 상당 기간 조사를 하지 않은 데에 손을 놨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 측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수사외압 의혹을 담당하는 부서는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로, 평검사는 4명이다. 수사4부는 '감사원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도 맡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감사원 수사에 인력이 집중됐다. 지난해 9월 감사원 압수수색에 이어 12월에는 유병호 사무총장을 소환해 밤샘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장 수사외압 의혹 수사에 힘을 실으려 해도 검사정원 25명 중 20명밖에 남아있지 않아 인력을 재배치할 여유도 많지 않다. 심지어 공수처장과 차장은 지난 1월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후 아직까지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정치적 외풍을 막아줄 처장·차장이 없는 대행체제에서 과감하게 수사에 나서긴 어렵다는 분위기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달 처장 후보로 오동운·이명순 변호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20일 넘게 임명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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