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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대기, 이제 없어질지도…'꿈의 기술' 나왔다

장기이식 대기, 이제 없어질지도…'꿈의 기술' 나왔다

120세 시대가 온다
(2) 줄기세포 기술로 '맞춤형 장기' 생성

본인의 세포·조직 활용
맞춤형 장기 개발 연구
고질적 장기 부족 해결
안전성 문제도 원천차단
미국 UC샌타바버라 노화연구소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예쁜꼬마선충을 관찰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부속 노화연구소(CALS)는 심장 간 등 장기를 우리 몸속에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연구에 한창이다. 인류가 조물주의 영역에 도전하는 또 다른 사례다.

지난달 기자가 찾은 CALS의 조엘 로스먼 소장은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이식받지 않고 체내에서 장기를 생성할 수 있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피부세포나 근육으로 신장 간 등 장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가능성은 확인했다. 8년 전 실험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의 자궁을 장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피부나 근육을 심장, 신장으로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다. 로스먼 소장은 “먼 미래가 되겠지만 언젠가는 이식 없이 환자의 몸에서 망가진 장기를 대체하는 장기를 거부반응 등 안전성 문제 없이 제조해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식할 장기가 없어 사망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한국이 5만 명, 미국은 10만 명에 이른다.

인공장기 연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동부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팀은 인공 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직 크기가 2~3㎜로 작아 환자 치료에 쓸 수 없지만 진짜 뇌가 신경신호를 보내듯 외부로 전기신호를 내보낼 수 있다. 손상된 뇌 조직 복구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덕호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는 “소뇌, 중뇌 등 다양한 뇌 조직별로 배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위장·폐 세포 떼어내 망가진 심장 교체
내 몸으로 '셀프 장기이식' 가능해진다
길이 1㎜에 겨우 20일이면 수명이 다하는 예쁜꼬마선충은 노화 연구자들의 오랜 파트너다. 쥐 같은 실험 동물에 비해 수명이 짧아 연구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서다. 지난달 기자가 찾은 미국 UC샌타바버라 노화연구소(CALS)에서는 예쁜꼬마선충으로 몸속 장기를 다른 장기로 바꾸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조엘 로스먼 CALS 소장은 “줄기세포 기술을 활용해 예쁜꼬마선충의 자궁을 장으로 바꾸는 실험에 성공했다”며 “가령 피부조직을 안전하게 심장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심장병 환자는 다른 사람의 장기나 인공장기를 이식받지 않고도 새로운 심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근육 세포로 심장 만든다
2021년 설립된 CALS는 미국 솔크연구소와 함께 역노화기술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연구소로 꼽힌다. 설립자인 로스먼 소장은 “다양한 전공자와의 자유로운 융합연구가 CALS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예쁜꼬마선충의 자궁을 장으로 바꾼 연구 결과도 이런 자유로운 정신에서 나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기술의 뿌리는 다 자란 개체의 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역분화줄기세포(iPSC)다. 다 자란 사람의 세포도 줄기세포로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이다. 줄기세포는 늙지 않는 세포인데, 우리 몸의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독특한 세포다. 이전까지 역노화 연구에서는 나이 든 세포가 줄기세포가 됐을 때 생체시계가 ‘0세’로 재조정되는 데 주목했다. 망가진 간세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피부, 장기 등을 젊게 만드는 역노화 기술의 밑바탕이 된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이다.

CALS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세포를 젊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다른 세포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자궁세포를 장세포로 바꾸자 예쁜꼬마선충 몸속에 3차원 구조의 장이 만들어졌다. 줄기세포를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꾼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미 다 자란 개체에서 세포 종류를 바꿔 3차원 구조 장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건 CALS가 최초다. 로스먼 소장은 “자궁에서 장뿐만 아니라 어떤 세포든 원하는 다른 종류로 바꿔주는 ‘방정식’을 완성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술이 성숙하면 환자들이 더 이상 장기 기증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면역거부 반응에 대한 우려 없이 젊고 건강한 장기를 몸속에서 만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혈관 등 조직 재생은 상용화 단계
CALS의 연구가 장기 이식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예쁜꼬마선충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인체는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예쁜꼬마선충 몸속에서도 새로 만든 장은 안정적으로 구조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제 기능을 하진 못했다. 쥐, 영장류 등 사람과 가까운 고등동물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도 아직은 먼 이야기다.

대신 조직 일부를 재생하는 치료법은 궤도에 올랐다. 장기 대신 구조가 덜 복잡한 혈관이 자라나도록 하는 치료법은 상용화가 임박했다. 환자의 세포를 리프로그래밍해서 혈관을 생성하는 줄기세포를 만들거나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를 키워 이식하는 방식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이 연구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는 카리스바이오가 연내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맞춤형 인공장기 개발도 속도
인공장기도 CALS가 연구 중인 자가 장기 재생 기술보다 더 빨리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특정 장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키운 유사 장기체인 오가노이드는 미래 인공장기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오가노이드도 아직 장기 자체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세포 집합체에 가까운 수준이다. 크기도 2~3㎜ 정도밖에 구현하지 못했다. 인공장기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뇌 심장 등 특정 장기의 기능을 본뜬 것이어서 약물 효능 분석 등에 활용되고 있다. 과학계에선 10년 내 상용화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덕호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팀은 뇌 오가노이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제이슨 김 연구원은 “줄기세포에는 개인 유전자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맞춤형 장기 유사체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샌타바버라=이우상/볼티모어=남정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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