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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의 신간] 힘 좀 쓰는 언니들

[이지은의 신간] 힘 좀 쓰는 언니들

「나, 블루칼라 여자」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 10인의
당당한 생존기
이 책은 남성 중심적인 블루칼라 직종에서 여성 노동자가 겪는 '고군분투기'를 담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블루칼라(생산직에 종사하는 육체 노동자)와 화이트칼라(사무직에 종사하는 노동자). 일견 상반된 듯하지만, 이는 직업군의 성격을 분류한 것에 불과하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대가와 성취감은 다를 바 없어야 한다. 하지만 위험한 업무 환경과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 등을 놓고 보면, 블루칼라 작업 현장이 훨씬 더 '거칠고, 험한 일터'임에 분명하다.

남녀 성비에도 차이가 보인다. 실제 남성이 다수인 블루칼라 직종에서 여성이 자리를 잡고 일을 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물차 기사·용접 노동자·목수·철도차량 정비원·주택 수리 기사 등 '힘 좀 써야 하는' 직업들이 그러하다. 

여기 남성들만 가능할 것 같았던 '험한 일, 거친 일'을 해내며 자부심으로 살아온 여성들이 있다. 「나, 블루칼라 여자」는 여성 10인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양한 스펙트럼 속 여성 베테랑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남성조차 버티기 어려운 직군에서 당당하게 커리어를 이어온 블루칼라 여성들의 생존기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저자는 '남성의 일터'로 여겨졌던 곳들을 찾았다. 부산 신항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는 김지나씨, 아파트 건설현장서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신연옥씨, 철도를 수리하는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씨, 주택 전반을 수선하는 주택 수리 기사 안형선씨, 목조 주택을 짓는 빌더 목수 이아진씨를 '거친' 현장에서 만났다. 

건설현장 자재정리·세대청소 작업반장인 권원영씨, 레미콘차 기사 정정숙씨, 먹매김 베테랑 김혜숙씨, 자동차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씨, 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씨 또한 '험한 일' 하고 있었다.

다양한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일하는 블루칼라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저자는 "그동안 블루칼라 현장은 위험하고, 일도 도제식으로 배우다 보니 마초적인 문화가 익숙했던 게 현실"이라며, 여성 노동자 또한 드물었기에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한다. 

저자가 만난 여성 노동자들은 "'차라리 식당 일을 하지 왜 이렇게 험한 일을 하러 나왔냐'고 걱정하는 이도 있었고,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하면 우린 어떻게 먹고사느냐'며 따지는 이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대부분 여성을 '동료'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남성 동료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초적인 남성 동료들도 일에 '진심'인 그들을 여자가 아닌 '동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자기 목소리를 내며 투쟁해 조금씩 조직 내 문화도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들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 일하면서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저자가 만난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를 사랑했고, 자신의 기술을 사랑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를 소중히 여겼다. '힘 좀 쓰는' 언니들의 프로페셔널한 기술의 세계가 블루칼라 현장뿐만 아니라, 삶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에게 적잖은 기운을 북돋아주리라.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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